‘몸 낮추기 정치’의 안팎

‘몸 낮추기’가 정치권에서 유행이다. 지난 7/28 보궐선거 이후부터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를 뚜렷하게 알려주는 사진 한 장이 얼마 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여권 실세 한명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당사를 찾아와 어느 최고위원과 인사를 나누는데 서로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일종의 희화(戱畵)로 느낄만한 사진이었다.  

실제로 ‘왕의 남자’로 불릴 정도인 그 여당 정치인은 선거 기간 내내 몸 낮추기 운동을 인상 깊게 시범했다. 권력 실세임에도 불구하고 중앙당의 지원을 거부한 채 요란한 유세도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낮은 자세로 유권자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압승했다.  

반드시 그를 본받아서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새 총리 내정자 역시 몸 낮추기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내정자에게 의례적으로 배정되는 승용차를 마다하고 한 급 낮은 차를 주문해서 정부종합 청사에 마련된 총리 내정자 사무실에 첫 출근하는 모습이 보도 됐다.40대의 젊은 총리 내정자가 보여주는 이런 몸 낮추기 자세가 국민의 눈에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정치인의 몸 낮추기가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속뜻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라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돌아가는 모양새를 통해 보면 정치인들의 몸 낮추기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가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지금 여야 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 내부 갈등은 우리 정치의 본질적 생리가 여전히 국민보다도 권력, 민생보다도 계파이익이 먼저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듯싶다. 섬김은 없고 정쟁만 난무하는 꼴이고 보니 몸 낮추기가 그저 보도 사진용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국민은 지난 6/2 지방선거와 7/2 재•보궐 선거를 통해 여야 정치권에 순차적으로 엄중한 경고를 내렸다. 그래서 여당은 지방 선거에 완패하고 나서, 야당은 재•보선에 참패 한 후 각각 패배의 원인을 ‘오만’이라고 자체 진단하고 ‘국민이 무섭다’고 했다.  

양명학(陽明學)의 효시인 중국 명나라 중기의 사상가 왕양명의 어록을 수록한 ‘전습록’傳習錄)에는 이런 경구가 나온다.“인생의 가장 큰 병폐는 오직 傲(오- 거만함)라는 한 글자에 있다”(人生大病 只是一傲字) . 어디 개인의 삶뿐이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정치 또는 정치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자세는 오만이다. 정치인 개개인이 보여주는 외형적 몸 낮추기보다도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섬김의 정치야 말로 시대적 요구라고 하겠다.

Posted by 평화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