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 국제적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난달 오바마·후진타오 회동 때의 일이다. 두 강대국 지도자의 만찬에 나온 샐러드 재료가 모두 백악관의 30여평 텃밭에서 재배된 야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텃밭 경작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에서는 지금 남북 사이에 그것의 개념뿐 아니라 생활 속에 차지하는 중요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주민들의 생존 실상이 농경시대만도 못한 지경에 이른 북한에서 지금 텃밭은 유일한 자본주의적 영농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구별 텃밭에서 생산하는 야채가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중요 품목이기 때문이다. 배급이 사실상 끊겨버린 상황에서 가구마다 장마당경제에 기대어 겨우 생존을 영위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북한 동포들에게 텃밭은 날로 더 소중해 지는 생존의 터전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자본주의 나라 한국사회에서는 이제 생존을 위한 경작지로서의 텃밭은 사실상 사라졌다. 도시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성장한 세대는 텃밭의 모양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텃밭 상실의 시대인 셈인데, 오직 정치영역에서만은 텃밭이라는 말이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다.


정치권에서 텃밭은 바로 정당별 지지기반으로서의 지역을 말한다. 어느 정당은 영남이 텃밭이고 어느 정당은 호남이 텃밭이라는 식이다. 말하자면 ‘정당텃밭’인 셈이다. 문제는 망국적 지역 갈등이 바로 이 정당텃밭에서 나와 번졌다는 점이다.


이 제 정치권에서 쓰이는 텃밭은 이름도, 주인도 바꾸어야 한다. 바로 ‘자치(自治)텃밭’이다. 정당별 지지기반으로서의 정당텃밭이 아니라 진정으로 유권자가 자기 권익을 지키고 키워 갈 수 있는 정치터전이 바로 ‘자치텃밭’이다. 정치의 변화는 거기에서 싹튼다.


실 제로 일본에서는 그런 조짐이 본격화되고 있다. 소규모 지역정당이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실시된 나고야 시와 아이치 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지역정당 후보들이 집권당인 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민당 등 거대 정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이기고 당선됐다. 그들이 간판으로 내세운 정당 이름도 정치적 지향 목표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감세(減稅)일본’ ‘일본 제일아이치회’가 정당명이다. 민주 자유 등 거창하지만 추상적인 이념을 내건 정당명이 아니다. 일본 정치가 자치텃밭을 변화의 발판으로 삼아 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왜 이런 변화가 오고 있는가. “기존 정치의 구태에 신물이 난 지방유권자의 반란”이라는 일본 언론들의 평가가 변화의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구태 정치에 신물 나기는 한국 유권자가 일본 유권자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 정치의 변화도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추세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서는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정치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몇 개 정당이 정치적 영농지를 분할해서 차지하고 있는 꼴인데도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주민의 머슴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의 소속 정당은 특정 지역별로 사실상 정치적 대지주로서 행세해 왔다. 그 정치 영농지를 자치텃밭으로 세분해서 영농권과 소출을 전부 주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한국의 현행 정당법은 당을 창당하려면 5개 이상의 시·도당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역주의 정당을 극복하기 위해서라지만 오히려 정치적 지역 분할을 심화시켜 왔을 뿐이다. 정당텃밭을 갈아엎고 자치텃밭으로 가꾸어 가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 창당 요건의 개선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의 청산을 위해서도 이는 긴요하다. 때마침 고향집 텃밭에 새싹이 돋아날 새봄도 머지않았다.


황선조 평화행동 대표

Posted by 평화행동